2015년 여름 휴가중에서
순천에 있는 낙안읍성을 녀왔습니다.
예전의 삶의 공간을 현재까지 이여온 모습속에서 잠시 지금의 편안함의 공간이 좋은 것만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을 해 봅니다. 지금 편안함의 공간에서는 무엇인가 희생의 공간이 있지 않을까요?
옛 향취를 느끼면서 좋은 시간과 함께 했습니다.
2015. 07. 31.
낙안읍성에서
고려 후기부터 왜구가 자주 침입하자 1397년(태조 6)에 낙안 출신의 절제사(節制使)인 김빈길(金贇吉)이 흙으로 성곽을 쌓았다.『세종실록』에는 1424년(세종 6) 9월부터 성벽을 돌로 고쳐 쌓으면서 원래의 규모보다 넓혔다고 기록되어 있다.
석축으로 고쳐 쌓는 작업은 1450년 경에 거의 마무리되었는데, 당시 성벽의 둘레는 2,865척이고, 높이는 평지에서 9.5척이지만, 높은 곳은 8.5척이었으며, 성벽 위에 낮게 쌓은 여장(女墻)이 420개로 높이가 2.5척이었다고 한다. 또한 성문은 3곳이었는데 옹성을 두지 않았고, 옹성과 성문을 지키기 위해서 성문 옆에 쌓은 네모난 적대(敵臺)는 12개를 만들기로 하였지만 4개만 설치하였다고 전한다. 성 안에는 우물 2곳과 연못 2곳이 있었으며, 성 밖에 성벽을 둘러 판 해자(垓子)는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옹성은 그 뒤에 설치되었고, 여장도 무너진 것을 다시 고쳐 쌓았지만 지금은 모두 무너져 없어진 상태이다. 현재 남아 있는 읍성의 모습은 성벽의 축조나 적대의 존재 등에서 조선 초기 성곽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준다.
읍성은 낮은 구릉을 포함한 평지에 동서 방향의 긴 장방형으로 자리하고 있다. 동문은 악풍루(樂豐樓), 남문은 쌍청루(雙淸樓, 鎭南樓), 서문은 악추문(樂秋門) 등으로 불렸는데 터만 남아 있을 뿐이고, 옹성은 남문터와 서문터에서만 흔적을 볼 수 있다. 적대는 전하는 기록대로 동문터 좌우와 동북쪽·동남쪽 모서리에 각각 하나씩 있다.
성벽의 둘레는 1.385㎞이다. 동문터의 남쪽 부분이 가장 잘 남았는데, 높이는 4.2m이고, 위쪽 너비와 아래쪽 너비는 각각 3∼4m, 7∼8m이다. 아래쪽에 커다란 깬돌을 이용하여 쌓아 올리면서 틈마다 작은 돌을 쐐기박음하였으며, 위쪽으로 갈수록 석재의 크기를 줄였다.
이 읍성은 가장 완전한 모습으로 보존된 조선시대 읍성 가운데 한 곳이다. 특히 성 안의 마을은 전통적인 면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1984년부터 낙안읍성민속마을보존정비계획이 수립되어 보존을 위한 정비사업이 연차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순천낙안읍성 [順天樂安邑城]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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